n번방 너머n

디지털성범죄, 우리 손으로 끊어내기

가해자도, 피해자도 청소년이 다수였던 n번방 사건. 세상은 진공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범죄로부터 완전히 차단될 수 없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정보를 알아야 할까요?

이른바 '얼평'과 '몸평'. 장난으로 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요? 수학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으로 다른 친구들이 성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알게 되면 불쾌하겠지요. 핵심은 당사자가 성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성적인 욕구나 즐거움을 위해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물건처럼 대하는 것을 ‘성적 대상화'라고 합니다. 몰래 사진을 찍은 것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몰래 사진을 찍고 이를 단톡방에 올린 건, '불법 촬영'이자 그 결과물을 ‘유포'한 것입니다. '몰카'나 '도촬' 같은 가벼운 실수가 아닌 중대 범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성범죄 예방 교육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에 치중돼왔습니다. 범죄 예방에 큰 효과는 없었고 범죄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았지요. 가해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가해 예방은 자녀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의심하라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왜곡된 성인식이 아이들에게 침투할 수 없도록 면역력을 길러주자는 취지입니다.

위 사례에 나오는 ‘진도’는 애인과 스킨십을 어디까지 했느냐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개인적 관계에 관한 질문, 성적인 말 등으로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모멸감 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언어적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라며 억울해하지만, 질문한 사람의 의도보다는 듣는 사람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사적인 질문을 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코로나19로 학교에서 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많은데, 이때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으면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비공개 채팅’은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방심하기 쉽습니다. 채팅창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점, 그리고 비공개 채팅도 모두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실제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만 합성한 것이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합성사진이 마치 실제로 찍은 사진인 것처럼 공유된다면 어떨까요?

n번방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딥페이크’ 또는 ‘지인 능욕’이라고도 하는데, 지인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신체와 합성한 사진을 공유한 사건입니다. 인터넷에 한번 올라간 사진은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 큽니다. 이런 이유로 합성사진을 유포하는 것도 디지털성범죄로 엄중하게 처벌받습니다.

친구가 올린 합성사진을 SNS에서 봤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작은 가해 행동(SNS에 친구 합성사진 공유하기)이 제재받지 않으면 점점 더 큰 가해 행동(불법촬영물 공유하기)을 할 가능성이 크겠지요. 친구에게 하는 작은 잔소리가 큰 범죄를 막을 수 있으니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또래 관계와 분위기에 따라 반응 수준은 다양하겠지요. “그건 아니지” “그런 거 그만둬”라고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발언, “아이, 왜 그래”라며 흥분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제스처, “몰래 찍은 사진 공유하는 거 불법이야”라며 정보 제공하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면 웃다가 멈추거나, 정색하거나, ‘...’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STOP’의 신호가 될 수 있어요. 단체채팅방에 있던 다른 친구들을 포섭해 함께 제지하는 것도 부담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이 사례의 주인공처럼 고민하다가 즉시 개입하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무엇이 두려워서 그런지 스스로 들여다보세요. 친구와 멀어질까봐, 따돌림 당할까봐, 자신이 못난 사람으로 보일까봐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요.

상대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도 성희롱에 해당해요. 사례의 주인공은 성희롱 가해 행위를 방관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피해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자기 느낌을 그저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방관하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너희는 재미있게 봤을 수 있겠지만 나는 메슥거리고 불쾌하더라.” 이런 말을 누군가 해주지 않는다면 모두가 그 상황에 동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면 비슷하게 느꼈지만 말하지 않았던 다른 친구가 카톡방에서 공감하고 안도할 거예요. 또, 다음에 다른 곳에서 목소리를 보탤 용기를 낼 수도 있고요!

이제 방관자는 단지 ‘가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에 그치지 않고 쉽게 가해하는 환경에 놓여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화방에 공유된 성착취물을 무심코 내려받거나 공유하는 순간 가해에 가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방관이 가해로 이어지는 환경을 막을 방법은 더 적극적으로 가해를 저지하는 것입니다.

혐오감이나 성적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나 영상을 전송하는 것은 성범죄에 해당합니다. 본인에게는 재미있는 영상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불쾌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음란물은 단순히 ‘야한 영상’ ‘19금 영상’이 아닙니다.



성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여 자극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냅니다. 여성의 반응이나 생각,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남성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 집중하지요. 이 과정에서 상대의 존엄성이 크게 훼손되는데, 음란물은 이런 관계가 당연하고 심지어 여성 또한 즐긴다고 묘사합니다. 이런 영상을 자주 보면 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겠지요.

또한 ‘음란물’이라는 이름으로 공유되는 영상 중에는 ‘불법촬영물’도 있습니다. 사전에 합의한 배우가 등장하는 음란물과 달리, 개인 간 성관계를 몰래 촬영하여 공유한 것을 불법촬영물이라고 합니다. 불법촬영물에는 피해자가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불법촬영물을 보거나 공유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임을 잊지 마세요.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할까요?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도 방관의 태도입니다. 적극적으로 자녀와 음란물 시청에 관해 대화하고자 할 때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팁을 제안합니다.


STEP 1. 자녀의 성적 욕구를 인정해주세요
만약 자녀가 크게 비난받거나 혼날 경우, 성적 욕구나 성관계 자체를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성의 존재가 아닙니다. 자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STEP 2. 성욕과 음란물 시청을 구분해주세요
음란물 시청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 ‘안 보는 게 더 문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호자가 음란물 시청을 당연하게 여길수록 자녀는 음란물이 보여주는 잘못된 판타지를 현실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시선에 익숙해지고 성범죄의 심각성에 둔감해질 우려도 있습니다. 평소 자녀 앞에서 음란물 시청을 농담거리 삼거나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STEP 3. 차단하기보다는 대처 능력을 길러주세요
휴대전화·컴퓨터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음란물을 접할 경로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지요. 꼭 필요할 경우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의존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음란물을 접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힘을 길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음란물을 접하기 전에 제대로 성교육을 해야 하고, 음란물이 잘못된 방식으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서 성폭력 예방은 ‘가해 예방’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짚어봤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방어가 필요할 때도 있죠. 위험에 처했을 때, 혹은 위험 상황을 알아차리고 ‘최소한의 방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학생들의 성인지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 연구를 진행하는 초등교사들의 모임이다. 아웃박스는 성 고정관념이라는 상자에서 벗어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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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윤(만화)

두 권의 그래픽 노블 <재윤의 삶>과 <서울구경>을 출간했다. 서울신문 젠더연구소와 서울특별시 교육청 성평등팀의 공동기획으로 <오늘의 젠더 이야기 - 모던타임즈> 를 서울신문에서 연재했다.